금남로(錦南路)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5ㆍ18민주광장)에서부터 유동 4거리까지의 중심 도로를 일 컬는다.
정충신 장군의 호를 따서 만든 금남로가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969년 말이었다. 도심을 종단하는 도로 가운데 금남로의 노폭이 가장 넓어서 자연스럽게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금남로는 행진의 장소로, 5ㆍ18민주광장은 집회나 행사의 장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이는 집합행동의 효과 측면에서도 적절했다.
5·18민중항쟁에서 금남로는 ‘행진’, ‘항전’, ‘학살’의 의미를 모두 갖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5월 14~16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을 위시로 한 광주지역 대학, 중ㆍ고등학생 그리고 시민이 참여했던 ‘민족ㆍ민주화성회’의 참석자들은 금남로를 행진하며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화’ 등을 부르짖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비상계엄이 확대 선포되고 계엄군이 폭력을 행사하자, 학생과 시민은 다시금 금남로로 나아갔다. 이들은 특수 훈련을 받은 계엄군이 자신들을 이렇게 공격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계엄군은 금남로를 기준으로 종단 혹은 횡단하여 영역을 할당하고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계엄군은 특수 진압봉, M16 개머리판, 그리고 대검으로 학생과 시민을 공격했다. 계엄군은 시위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눈에 거슬리는 데로 골목길 민가에까지 들어가 만행을 저질렀다. 학생과 시민을 특히 분노하게 한 행위는 광주 가톨릭센터 등지에서 남녀 젊은이들을 속옷만 입힌 채 기합을 주고 희롱하는 것이었다. 체포한 사람을 트럭으로 연행하는 광경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과 같았다.